“인생이 쉬워지는 방법은 적당한 거리두기이다.”
인생의 모든 불행은 ‘거리 조절’의 실패에서 온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살아야 할까? 하지만 관계에서, 돈에서, 일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를 다스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인생의 적당한 온도와 온기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난로 같은 온기가 필요하다. 적당한 난로의 온기를 느끼려면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된다. 인생의 모든 소중한 것들, 예를 들면 가족, 돈, 일은 딱 난로와 같다.
오늘 당신의 거리는 안녕하신가요?
심리적인 안전거리는 가족이라도 예외가 없다. 가족은 가장 가깝기 때문에 가장 큰 상처를 주고받는다. 웰니스의 관점에서는 건강한 가족관계란 ‘무조건적인 밀착’이 아니라,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건강한 거리두기>에서 시작한다. 가족은 나무와 같다고 한다. 너무 붙어 있으면 서로의 영양분을 뺏고 햇빛을 가려 결국 둘 다 병든다.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각자 크고 울창한 나무로 자랄 수 있다. 너무 기대를 하면 실망이 크고, 너무 멀면 외롭다.
우리가 주식에서 ‘포모(Fomo)’를 경험하는 것도 결국 돈과의 거리 조절에 실패한 결과이다. 주식 차트와 내 심박수를 동기화하지 마라. 주식은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이지 ‘자아’가 아니다. 결국 인간 관계에 거리를 두듯이 주식 계좌와 나 사이에도 건강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관계의 거리와 디지털 웰니스의 핵심은 이해하겠는데, 회사나 직업은 멀리 할 수 없지 않는가?
“직업은 내가 입고 있는 ‘옷’일 뿐 내 ‘몸’이 아닌 것이다. 옷이 더러워지거나 찢어질 수는 있지만, 나의 몸까지 상처를 입힐 수는 없다.” 이 말은 매우 마음에 와 닿는다. 일이나 작업을 수행할 때 번아웃에 빠지지 말고 업무의 중독에서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라는 말일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난 과거의 영광과 후회에 매달리고 오늘을 낭비하는 일도 포함된다. 이때는 과거와 ‘시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는 시간, 너무 많은 정보에 에너지를 빼앗기는 시간들이 결국 복잡하고 불필요한 일에 몰두하게 만들어 중요한 일을 단순하게 처리하고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이는 일을 방해한다. 정보와 나 사이에도 ‘필터링된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그 일을 혐오하게 된다?
이 말에 동의하는가?
★ 중용의 미학 — 적당한 거리가 사랑을 지킨다.
나는 이 명제에 조건부로 동의한다. 열정이 의무로 바뀌는 순간, 사랑은 서서히 마모된다. 그러나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거리 조절’의 실패에서 비롯된 결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德)을 과잉과 결핍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찾았다. 일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몰입은 열정을 소진시키고, 지나친 거리는 냉담으로 이어진다. 핵심은 ‘의도적인 여백’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되, 그 일로부터 주기적으로 물러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주말의 산책, 전혀 다른 분야의 취미,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소소한 시도들 — 이것들은 나태함이 아니라, 사랑을 갱신하는 행위다.
좋아하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는 것은 축복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축복이 저주로 뒤바뀌지 않으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이 일과 얼마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가?” 완전한 합일도, 완전한 분리도 아닌 — 그 사이 어딘가에 지속 가능한 열정의 자리가 있다.
✒︎ 여기에 두가지의 사례가 있다.
► 긍정적 사례 — 적당한 거리를 지킨 화가 – 어릴 때부터 그림을 사랑했던 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다. 그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도 매주 하루는 ‘수익과 무관한 개인 작업의 날’로 고집스럽게 비워두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마감에 치이는 날들이 계속되어도, 그 하루만큼은 순수하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다. 그는 말했다. “직업으로서의 그림과 나로서의 그림을 구별하지 않았다면, 나는 5년 안에 붓을 놓았을 것이다.” 그에게 ‘거리두기’는 도피가 아니라 사랑을 보존하는 의식(儀式)이었다.
►부정적 사례 — 번아웃에 빠진 소설가 –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삶의 이유로 삼았던 한 소설가는 데뷔 후 출판사의 요구에 맞춰 매년 한 권씩 소설을 써냈다. 처음에는 꿈이 현실이 된 기쁨이었지만, 7년째 되던 해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더 이상 책 읽는 것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을. 서재에 들어서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글은 더 이상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납품해야 할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결국 2년간 창작 활동을 멈추고서야 다시 종이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건강한 거리두기는 건강한 개인주의로 이어진다.”
결국, 인생의 모든 것과 거리를 두는 연습은 나 자신을 소홀히 대하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가족과 거리를 두고, 주식 차트와 거리를 두며, 직업적 자아와 거리를 두는 것, 이것은 나태한 이기주의가 아니라, <건강한 개인주의>의 시작이다.
건강한 개인주의자는 자신의 경계를 소중히 여기기에 타인의 경계 또한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허락할 때, 비로소 사회는 불필요한 간섭과 비교라는 피로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독립적인 개인들이 모여 만든 사회는 서로를 옭아매는 사슬이 아니라, 각자의 빛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은하수가 된다.
<한줄 요약> 진정한 웰니스는 나로부터 시작해 우리로 번져가는 ‘건강한 거리’ 위에 세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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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vard Busoness Review -How to Disconnect from work
★참고 사이트 –